김해김씨(金海金氏) 도총관공 휘경신파(都摠管公諱敬臣派)는 고려때 도총관(都摠管)을 지내신 휘경신(諱敬臣)을 중조(中祖)로 모시는 계파(系派)이다.
1.중조(中祖) 휘 경신(敬臣)은 시조(始祖) 수로왕(首露王)의 몇 세손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다만 수단하한1761년 보첩(정덕보연계)과 1881년 신사보(정덕보연계)에는 기록이 없었는데,
1925년 을축보 부(附) 정덕보(正德譜)에 신빈(信彬)의 차자(次子)로 이학(以學)이, 이학(以學)의 자(子)로 경옥(敬玉), 경신(敬臣), 경보(敬輔)로 가필(加筆)되었고 이후 다른 보첩에도 가필(加筆)되기 시작하였음이 확인된다.(보학연구게시판의 가락국선원세계,상계.정덕보세계 참조) 따라서 휘 경신(敬臣)이 수로왕으로부터 51세라는 것은 근년에 가필(加筆)된 기록인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 사항
1754년 갑술보를 살펴보면 휘경신(敬臣)에 대한 기록은 발견되지 아니함.
동 보첩에 좌랑행경파(佐郞行瓊派)라는 기록이 있는데 1세(世) 시조가락국왕 원손(遠孫) 행경(行瓊) 호조좌랑(戶曺佐郞), 2세(世) 극검(克儉) 천순기묘(天順己卯서기1459년) 등문과(登文科)로 기록되어 있는데 후대의 보첩에 휘극검(克劍)은 중조(中祖) 경신(敬臣)의 7대손으로 기록되고 있으니 1대간 연대를 30년으로 잡으면 중조(中祖) 경신(敬臣)은 서기1250년경에 살이신 선조(先祖)로 추정할 수 있음.
도총관이란 오위도총부의 총수로서 고려시대에는 잘 보이지 않고 충렬왕 때에는 총관으로 불렸으며 조선조에 이러르 도총관이라 한 것 같
다. .
고려사 77. 제25대충렬왕(忠烈王,1274~1308재위34년) 7 와 고려사절요/권이십/충렬왕/신사 7년(1281) 에 보면
계미 10월 기해에 원이 칙령으로 본국의 금주(김해) 등처에 진변만호부를 두고 인후로써 소용대장군 진변만호를 삼아 호부와 인을 사하고 장순룡으로 선무장군 진변관군총관을 삼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계미 冬十月 元置鎭邊萬戶府於金州等處(원 나라에서 진변만호부(鎭邊萬戶府)를 금주(金州) 등 지방에 설치하였다)
以印侯(인후(印侯)를) 爲昭勇大將軍鎭邊萬戶(소용대장군 진변만호로 삼고 )賜虎符及印( 호부(虎符)와 인을 주었으며)
張舜龍( 장순룡(張舜龍)을) 爲宣武將軍鎭邊管軍摠管(선무장군 진변관군총관으로 삼았다.
여기서 유추해보면 진변이란 금주(김해)를 말하며 탐라총관부와 연계를 가진 진변 총관부의 군사령관의 직책을 가진듯하다.
병제의 변천-고려 말 이성계가 병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설치한 삼군총제부(三軍摠制府)를 1393년(태조 2) 의흥삼군부로 고쳐 10위를 3군으로 나누어 귀속시키고 승추부-삼군진무소-오위진무소로 개칭되다가 1466년(세조12) 관제개혁 때 오위도총부로 바뀌고 도진무가 도총관으로 바뀐 중앙최고의 군사기관이며 병조(兵曹)와 평행관계(횡적관계)의 위치였던 군령기관으로 금군과 함께 궁궐의 수비임무를 맡았음.
조선시대 나라안의 모든 군사를 통솔하는 다섯 개의 군사단위가 있었는데. 곧 의흥위(義興衛), 용양위(龍양衛), 호분위(虎賁衛), 충좌위(忠佐衛), 충무위(忠武衛)라고 한다. 이를 담당하는 관청을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라하고 이 오위도총부내에 정2품에 해당하는 도총관(都摠管)이라는 직책이 있었다.
3.도총관공파(都摠管公派)라고 하는 것은 위의 도총관(都摠管) 벼슬을 한 조상을 중조(中祖)로 모시는 파(派)이므로, 도총관공파(都摠管公派)는 유일한 파가 아니라 여러 개가 있을 수 있다.
김해김씨에 도총관공파(都摠管公派)로는 도총관공휘경신(敬臣)파, 도총관공휘성(晟)파, 도총관공휘추(錘)파(사군파의 지파), 도총공(都摠公) 언국(彦國)파 등이 있으므로 중조(中祖)가 어느 분인지 보첩(譜牒)을 살펴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