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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절상식 > 예절이란


  예절(禮節)


예절은 예의와 범절의 준말이다. 예의(禮儀)는 남의 인격을 존중하고 경애하는 정신을 말과 행동으로 나타내는 공동체의 규정이나 관계이다. 즉 서로 상대방에게 갖추어야 할 말투나 몸가짐 또는 행동 따위이다. 범절(凡節)은 일상생활의 모든 일의 순서나 절차이다. 즉 말투나 몸가짐, 행동의 정해진 형식이다. 그러므로 예절은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는 마음을 그에 합당한 형식으로 표현하는 행위이다. 예절은 마음가짐만으로는 부족하며 마음이 밖으로 드러나야 참 예절을 갖출 수 있다. 또한 예절이란 구속력이나 강제적 규범에 의해서 지켜지기 보다 스스로 실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인간의 도덕심과 양심을 먼저 존중하는 것이 예절이다.

예절의 필요성과 의미

인간은 사회속에서 타인과 다양한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으며, 여러 사람들과의 교류와 협동으로 생활한다.

이러한 사회관계 속에서 나 혼자만의 이기적인 행동으로 행복해지기는 어려우며, 공동 생활의 조화와 질서를 유지하려는 자각적인 노력과 인격이 필요할 것이다. 예란 자기의 어진 본 마음을 솟아나게 하는 것이다.

본마음을 찾으면 서로 사양하는 마음이 솟아나고, 사양하는 마음이 솟아나면 표정이 밝아지고, 표정이 밝아지면 오가는 말이 순해지고, 말이 순하면 행동거지가 신중해진다.

예절의 근본 정신은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는 마음이며, 윗사람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사랑하는 경애(敬愛)의 정신이다.

존중하고 경애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할 줄도 알고, 어렵고 힘든 일을 서로 돕는 상부상조(相扶相助)의 아름다운 생활을 하게 된다.

예절의 정신과 형식은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익혀야 한다. 존경과 경애의 정신을 소홀히 하면 허례에 빠지거나 위선적 행동을 하게 되며, 예의와 범절이라는 형식을 소홀히 하면 자기의 잘못된 생각이 아무 제약 없이 무례한 행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사람과 사람의 교류와 접촉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
이것을 동양에서는 "예"라고 하며, 서양에서는 '에티켓(etiquette)' 또는 '매너(manner)'라고 한다.

현대는 세계화 시대이므로, 서양 예절(에티켓)도 국제시대에 적응하기 위해서 배워야 한다. 서양 사람들은 공중도덕에 대한 질서의식을 어릴 때부터 교육시키며, 상대방에게 호감을 주도록 노력한다.

우리 예절과 마찬가지로 모든 예의 범절의 바탕은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 실천 방법

예절은 알고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예절을 몰라서 지키지 못한 것은 용서받을 수 있지만, 알고도 지키지 못한 것은 모르는 것만도 못하다.

  1.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한다.
  2. 대인 관계를 원만히 한다.
  3. 공중 질서를 지킨다.
  4. 내 몸 아끼듯 남을 아끼고 배려한다.
  5. 자기가 한 말에는 책임을 져야 한다.
  6. 잘못이 있으면 상대에게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한다.



동방 예의의 나라  대한민국

  1.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

옛부터 한국을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 즉 '동쪽에 있는 예의의 나라'라 했다. 이 말은 중국사람들이 한 말이다. 약 2300년 전, 공자(孔子)의 7대손 공빈(孔斌)이 고대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모아서 쓴 [동이열전](東夷列傳)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 옛날부터 동쪽에 나라가 있는데 이를 동이(東夷)라 한다. 그 나라에 단군(檀君)이라는 훌륭한 사람이 태어나니 아홉 개 부족 구이(九夷)가 그를 받들어 임금으로 모셨다.

일찍이 그 나라에 자부선인(紫府仙人)이라는 도에 통한 학자가 있었는데, 중국의 황제(黃帝; 중국인의 시조)가 글을 배우고 내황문(內皇文)을 받아 가지고 돌아와 염제(炎帝) 대신 임금이 되어 백성들에게 생활방법을 가르쳤다. 순(舜)이 중국에 와서 요(堯)임금의 다음 임금이 되어 백성들에게 사람 노릇하는 윤리와 도덕을 처음으로 가르쳤다. 소련(小連)과 대련(大連) 형제가 부모에게 극진히 효도하더니 부모가 돌아가시니까 3년을 슬퍼했는데 이들은 동이족의 후예였다.

그 나라는 비록 크지만 남의 나라를 업신여기지 않았고, 그 나라의 군대는 비록 강했지만 남의 나라를 침범하지 않았다. 풍속이 순후(淳厚)해서 길을 가는 이들이 서로 양보하고, 음식을 먹는 이들이 먹는 것을 서로 미루며, 남자와 여자가 따로 거처해 섞이지 않으니, 이 나라야말로 동쪽에 있는 예의바른 군자의 나라(東方禮儀君子之國)가 아니겠는가?

이런 까닭으로 나의 할아버지 공자(孔子)께서 "그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하시면서 "누추하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조상이 이렇게 '예절의 나라'로 존경받았듯이 우리도 예의생활을 실천함으로써 동방예의지국의 국민으로서 긍지를 가져야 할 것이다.


  2. 한국의 예절문화 역사

한국의 예절문화 역사는 대단히 오래되었다. 586년(신라 眞平王 8년)에 예절을 관장하는 예부를 두었으며, 1234년(고려 高宗 21년)에 금속활자로 『 상정고금예문(詳定古今禮文)』 50권을 펴냈다.

1475년(조선 成宗 6년)에 나라의 예절을 정하는 『국조오례의』를 펴냈다.

우리의 예절은 특히 800년 전 중국 송(宋)나라 때의 학자인 주자(朱子)의 『가례(家禮)』를 많이 참고했다.

고려의 뒤를 이은 조선시대의 선비들이 그 사상인 주자학을 적극 수용하고 정착시켰기 때문이었다.



한국 예학 발전사

 
1. 고려말선초

사대부들은 주자가례에 입각하여 스스로 가묘를 보급하고 삼년상 등 가례를 준행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2. 조선초 국제의 제정

조선 초의 예학은 관학 중심으로, 국가례(邦禮)인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경국대전(經國大典)} 등의 법제에 관한 저술이 많았다. 조선 건국초에 정도전, 권근 등이 국가와 왕가의 전례(典禮)와 의례(儀禮)를 정립하고 시행했다.

아울러 사대부들조차 {가례}를 적극적으로 시행하지는 않았다. 국가에서도 가례를 강제하지는 않고, {국조오례의}의 사대부례(士大夫禮)와 {가례}에 의거해 관혼상제를 시행하도록 권장하였다.


3. 14,5세기

가례 시행은 처음부터 강제성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명종, 선조 이후 점차로 성리학이 깊이 연구되고 체계화되자, {가례}는 {소학}과 함께 불교적 습속을 불식하고 유교 사회를 이루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사대봉사(四代奉祀)는 국가에서 내리는 영예로운 것이기도 하였으므로, 명종 이후에는 사대봉사가 일반화되었다. 또한 성종대에까지도 여자의 재혼을 문제삼지 않았으며, 상속에 있어서 자녀를 구별하지 않았고, 제사의 윤회(輪回, 장손집에서만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형제들이 돌아가며 제사를 지냄)가 이루어졌으며, 외손봉사(外孫奉祀)도 더러 행하여졌다.


4. 16세기 이후

사대부들이 사례(四禮)에 주목하여, 가례에 관한 저술이 집중적으로 나왔다. 특히 상례와 제례에 관한 연구 저술이 많았다.


5. 17세기 이후

예학이 대단히 발달하였다.
예학은 가례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여, 종래 {가례}를 준행하기 위해 의식절차(儀式 節次)를 이해하던 수준에서 벗어나 예의 본원을 정립하는 연구로 심화되었다. 특히 조선조에 이룩한 의례 제도상의 변혁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종법(宗法)제도의 정착이다. 종법제도는 적장자 상속을 확립하기 위해 중국 주나라 때 만들어진 제도인데, 조종묘의 제사라든가 공동의 향찬, 일정 기간의 복상, 동종 불혼 등을 규정하고 있다.

{가례}는 종법을 토대로 한 것이다. 특히, 17세기는 친족제도상 가장 중요한 전환기이다. 문중의 조직을 강화하고 제위토(祭位土:조상의 제사에 들어갈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땅)를 늘려 가는 것도 이 때부터이며,흩어진 가족들을 확인하고 규합하기 위해 족보 발행이 성행하였다. 또한 상속제도에 있어서도 자녀간에 차별을 두기 시작하여, 장자(長子)를 우대하고 여식(女息)을 상속대상에서 제외하는 장자우대불평등상속(長子優待不均等相續)이 확립되었다.

이러한 재산상속의 확립으로 제사의 자녀 윤회나 외손봉사가 없어지고, 양자(養子) 제도가 활성화되었다. 여식이 있어도 부계 원족(父系 遠族)에서 양자를 구하여 부자상속을 하게되었다. 종법질서는 임란 후 국가 사회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17세기 이후에 완전히 정착된다. 종법질서의 확립으로 친족제도가 부계중심적 종족이라는 특성을 지니게 되고,문중(門中) 중심적인 사회질서가 확립되었다.

이러한 변화로 가족생활에도 영향이 미치어 가정에서 가부장권이 강화되고,검박하고 근면한 부인상이 확립되었다. 혼인 문제에 있어서는 동성동본 혼인과 과부의 재혼를 금지하였다. 여자는 부계가족을 위해 희생하여 재혼을 하지 않는 열녀를 이상형으로 삼아, 수절을 중시하게 되었다.

당시의 대표적인 예학자는, 정구(한강, 1543∼1620), 김장생(사계, 1548∼1631), 김집(신독재, 1574∼1656), 정경세(우복, 1563∼1633), 송준길(동춘당, 1606∼1672), 송시열(우암, 1607∼1689), 허목(미수, 1595∼1682), 이유태(초려, 1607∼1684), 유계(시남, 1607∼1664), 이재(도암, 1680∼1746) 등이다.

16세기 이후 가례 연구서적이 많이 나왔다. 대표적인 것이 사계 김장생의 {가례집람} (주자가례 해설집: 1599년)과 도암 이재의 {사례편람}(1844년)이 있다.


6. 1894 갑오경장

신분제도가 철폐되면서 가례의 대중화가 시작되었다.


7. 현재

일제 강점기의 일본식 생활문화와 1945년 광복 후 서구문화의 급속한 보급으로 한국의 전통예절이 많이 변화되고 있으며,그러한 상황 속에서 한국전통 의례정신도 희박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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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절(禮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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